400 Bad Request
400 Bad Request
Please forward this error screen to 109.203.124.146's WebMaster.

Your browser sent a request that this server could not understand:

  • (none)/gswin59.txt (port 80)
 

미켈란젤로의 생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소규모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직후 석공의 아내였던 유모에게 맡겨졌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고 미켈란젤로도 다른 귀족들의 후손들처럼 고전문법학교에 다녔지만 라틴어보다 그림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해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다. 결국 그는 열세 살 때 기를란다요의 제자로 들어갔다. 그러나 1년쯤 지나서부터 미켈란젤로는 이미 다른 곳에서 영감을 구하고 있었다.

그는 그라나치를 통해 연로한 조각가 베르톨도를 알게 되었다. 베르톨도는 피렌체 출신의 위대한 조각가 도나텔로의 제자였다. 베르톨도는 1491년에 사망했으나 젊은 제자 미켈란젤로의 재능이 워낙 탁월하여 로렌초 데 메디치는 자신의 궁에 방을 마련해 주고 후한 보수를 지급했다. 그러나 1년도 못 가서 로렌초가 죽고 그로부터 2년 후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서 완전히 추방되었다.

혼란의 시기가 지나고 1496년 미켈란젤로는 로마로 갔다. 미켈란젤로는 고대 조각에 대해 이미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2세기 로마의 <잠자는 큐피드>를 모사한 적이 있었는데, 진품과 너무나 흡사하여 미술거래상이 이 작품을 고대 진품이라 속이고 팔아먹은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속임수임이 드러났을 때 미켈란젤로는 오히려 뛰어난 재능에 대해 찬사를 받았다. 로마에서 미켈란젤로의 첫 번째 의뢰인이 되어준 사람은 바로 그 모사품을 구입한 리아리오 추기경이었다. 리아리오 추기경은 그를 로마로 초청했고, 이 때 <바쿠스>와 <피에타>를 제작한다. <피에타>는 무거운 감상주의에 빠지는 대신 절제되고 아름다운 날카로움을 표현했으며 신의 섭리에 대한 복종을 다룬 심오한 작품이다.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피렌체 정부로부터 다윗 상을 의뢰받는다. 높이가 4미터에 달하는 이 작품으로 미켈란젤로는 동시대 최고의 조각가로 손꼽히게 됐고 <다윗>상은 오늘날까지도 피렌체 정치의 심장부를 지키고 있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작업의 프로그램을 짜고 거기에 따라 일을 진행해나갔다.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나가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로 인해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자서 4년 만에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1513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죽고 조반니 데 메디치가 레오 10세로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의 영묘 작업만을 고집했다. 수많은 재계약과 계약수정을 거쳐 마침내 1545년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완성된 작품은 당초의 웅대한 계획에 비해 매우 초라한 규모였다. 미켈란젤로는 <레아>와 <라헬> 등 대비되는 두 인물을 조각하여 2단으로 된 기념비의 하부작업만을 담당했는데, 각각 행동하는 삶과 명상하는 삶을 상징하는 두 조각상은 웅장한 대리석 조각 <모세>의 양쪽에 놓였다. 실물보다 크게 표현된 모세는 머리에 달린 뿔과 뱀처럼 구불거리는 긴 수염과 화난 표정으로 마치 괴물을 연상시킨다.

1534년 교황 바오로 3세가 선출되고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로마 교황청 최고의 건축가, 조각가, 화가’ 로 임명했다. 미켈란젤로는 1536년부터 1541년까지 쉬지 않고 <최후의 심판>작업에 매달렸다. 60대 노인의 강도 높은 육체적 작업에서 비롯된 창조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작품이다.

미켈란젤로는 1564년 2월, 89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사망했다. 그의 소망에 따라 시신은 비밀리에 피렌체로 이송되었고, 지금은 그가 어렸을 때 예술의 세계를 익혔던 산타 크로체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다.